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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 제주의 역사
 
유적으로,고인돌, 옹관묘, 토기, 마제석기 등이 제주도내 전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것은 옛제주인의 삶의 모습을 미루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화(삼성신화)에서는 그저 ‘아주 먼 옛날’ 삼성혈에서 삼을라가 솟아나 시작된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후 세을라가
벽랑국의 세공주를 맞아 농업과 목축업을 하며 뿌리를 내린 것으로 나오고 있다. 이것으로 제주에 외래문화가 유입되고, 원시부족국가가 성립했음을 추청할 수 있다. 제주에 원시국가가 세워진 연대는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제주가 본격적으로 기록에 나오는 것은 4~세기경인데,『삼국사기』『백제본기』에 의하면 탐라국이 백제에 토산물을 바치자 벼슬을 주었다.
(476년)라는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탐라라는 고대국가가 있어서 백제에 조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탐라가 처음에는 백제에 조공하며 받들었으나 백제가 망하자 고을라의 15대손인 고후, 고청, 고계 삼인이 배를 타
고 통일신라에 입조해서 성주와 왕자라는 봉작을 받음으로써 간접적이고 미약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확보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제주라는 명칭은 고려 고종(1214~1259년 재위)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에는 탐모라(眈牟羅),탁라,
탐라(眈羅),섭라(涉羅),주호(州胡) 등으로 불렸다.


탐라는 고려가 건국되자 처음에는 고려에 예속되기를 거부했으며, 이에 고려가 군사를 보내어 정벌하려 하자 탐
라왕 저견이 굴복하여 태자 고발로를 입조시킨 것으로 나타난다.
고려숙종 10년(1105년)에 탐라라는 국호가 폐지되고 탐라군으로 편제되어 독립국의 지위를 상실했다.
고려 왕조에서 관원이 직접 파견되어 민정을 관장하게 된 것이다. 육지로부터의 영향이 제주에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고려왕조가 원나라의 침략을 받아 굴욕적인 강화조약를 맺자 이에 항거하여 일어난 삼별초가 진도를 거쳐 제주도에 최후의 거점을 마련하여 항파두리성을 쌓는 등의 대몽 항전을 펼쳤다.

탐라는 1273년(고려원종 14년) 김방경을 비롯한 원나라
군사에 의해 평정되었는데 이때부터 약20 여년간 탐라총관부(耽羅摠管府)를 통해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이 형성되는 등 약100년 동안 직,간접적인 지배를 받게된다.
1294년(고려충렬왕 20년) 원나라는 탐라를 고려에 돌려 주었는데, 그 이듬해에 고려는 탐라를 ‘제주’로 개칭하
고 목사를 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육지부의 문화가 제주에 들어온 것은 이 시기일 것이다.
1402년 ‘탐라국’의 상징이었던 성주와 왕자는 조선왕조에 일조함으로써 탐라국은 끝을 맺게 된다.
1404년(태종4년)에는 탐라의 오랜 전통인 성주와 왕자의 봉작이 폐지되어 탐라인으로서의 귀족은 완전히 평민화되었다.
1416년(태종 16년)에 이르러 제주는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체제로 개편되어 중앙의 강력한 통제를 받게 된다.
일본의 왜구는 고려말부터 조선조 명종때까지 우리나라를 침범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일삼았는데 제주도에도 그 피해가 극심했다.
1437년(세종 19년)에 제주방어를 위해 3성, 9진, 10수전소, 25봉수대
(통신망), 38연대(감시망) 등의 방어시설을 정비했으며, 그 흔적이 지
금도 해안가를 중심으로 곳곳에 남아 있다.
제주도 역사를 살펴보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제주가 중죄급 유배인
의 귀양지였다는 사실이다.
1637년(인조 15년)에 광해군이, 1689년(숙종 15년)에는 우암 송시열이, 1840년(헌종 6년)에는 추사 김정희가, 1873년(고종 10년)에 면암 최익현, 1897년(광무 1년)에 외무대신이었던 김윤식이 을미사변에 연류된 것으로, 1907년(융희 1년)에는 외무대신 박영효가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조선말에는 유배인이 6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유배인들은 유배생활 속에서도 후학 양성에 힘써 제주의 교육.학문발
전에 많은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컸다
고 할 수 있다.

제주의 시련은 조선 말엽에 심했는데 관의 수탈을 받아야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군사기지가 되어 도민들은 강제 노역에 시달려
야 했다.
(송악산 일대는 가장 많은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일본군 진지, 비행장
활주로, 격납고 등이 널려 있다. 아직도 밭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일본군 격납고 14개가 남아있다)
해방후 1945년 9월 28일부터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1946년 8월 1일에 도(道)로 승격되어 행정상 이전까지 소속되었
던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다. 광복은 되었지만 4.3사건이 발생하여 이 소용돌이 속에 서 죽어간 사람이 수만이 되
었다. 4.3사건은 제주의 마을 곳곳에 상처와 아픔을 남긴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비극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제주는 입지적 조건과 수려한 자연경관으로 관광 휴양의 적격지로 지목되면서 ‘관광 제주’로 개발되어, 국내 제일의 관광지가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1973년부터는 제주도관광계획이 추진되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80년 10월 21일에는 남제주군의 남원면과 성산면, 북제주군의 구좌면과 애월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여 1시 2군
7읍 6면이 되었고, 1981년 7월 1일 서귀읍과 중문면이 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됨으로써 2시 2군 6읍 5면 체제로 현
재까지 이르고 있다.

2002년 6월에는 서귀포시에서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월드컵대회를 성황리에 끝마쳐 또 한번 제주도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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